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자유 — 복음을 위한 유연함
2026년 7월 1일 (수) · 고린도전서 9:19-23

본문 말씀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나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 고린도전서 9:19-23 (개역개정)
본문 해석 및 적용
바울은 자유인이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이 역설이 처음에는 낯설게 들립니다. 자유로운 사람이 왜
스스로 종이 됩니까. 그것은 복음 때문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바울은 자신의 권리와 편의를 기꺼이 내려놓았습니다. 이것은 굴종이 아니라, 복음을 사랑한 사람의 자발적
선택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 이것은 신념의 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깊은 신념에서 나온 낮아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먼저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이 되셨고, 높으신 분이지만 낮아지셨습니다. 그분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일 때, 우리도 복음을 위해 나를 낮출 수 있습니다.
오늘 내 주변에 다가가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의 언어로, 그 사람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 — 그것이 바울이 말하는 복음적 유연함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경직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더 유연하게 만듭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과 단순한 굴종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 차이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가 내려놓아야 할 나의 편의나 선호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 오늘 내 주변 누군가에게 그 사람의 자리로 내려가 다가갈 수 있는 작은 방법이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 저는 종종 내 방식, 내 편의, 내 스타일을 고집하는 모습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을 낮추셨던 바울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먼저 인간이 되어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 내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위해 조금 더 낮아지고 유연해질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소서.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