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5일 (수)
위협 속에서도 기도로 성벽을 재건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다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을 고쳐 건축한다 함을 듣고 매우 분노하여 8 다 함께 꾀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곳을 요란하게 하기로 꾀하였으나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느헤미야 4:6-9, 개역개정)
느헤미야와 백성은 “마음 들여” 성벽을 쌓아 올려 반쯤 완성합니다(6절). 아직 공사는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눈에 보이는 변화는 적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향해 순종의 벽돌을 하나하나 올릴 때, 세상은 그 움직임을 결코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성벽의 높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집중’—하나님을 향한 열정이었습니다.
외부의 반대는 협박만이 아니라, “그곳을 요란하게 하려”(8절) 는 교묘한 혼란 작업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사명을 흐리게 만드는 소문, 일정, 피곤함 같은 ‘요란함’이 스며듭니다. 느헤미야 공동체는 두 갈래로 대응합니다. 첫째, 기도—“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9절). 둘째, 경계—“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합니다. 영적 전쟁터에서 기도는 결코 현실 도피가 아니며, 경계는 결코 불신앙이 아닙니다. 기도와 경계는 같은 숨결로 움직이는 ‘믿음의 양 날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문을 여는 것이요, 우리는 그 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 파수꾼이다.”
– E. M. 바운즈
적들이 꾸민 혼란 속에서도 느헤미야는 문을 굳게 닫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도로 하나님이 일하실 길을 열어 두었고, 파수꾼을 세워 사람의 책임도 다했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 교회 사역 역시 기도로 세워지되, 구체적인 실천과 책임으로 보호받을 때 하나님 나라의 건축은 멈추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벽이 절반쯤 올랐을 때가 가장 취약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처음의 열정은 식어 가고, 완공의 기쁨은 아직 멀어 보이는 시점—바로 그때 기도가 느슨해지기 쉽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주야로”라는 단어를 선물합니다. 밤과 낮, 좋을 때와 어려울 때, 기도와 경계의 리듬을 놓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완성을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 내가 세우고 있는 ‘성벽’—곧 사명, 관계, 혹은 거룩한 습관—이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열정이 식어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 최근 내 마음과 상황을 시끄럽게 만드는 ‘요란함’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기도와 실천으로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요?
- ‘주야로 파수꾼을 두었다’는 표현을 오늘 나의 삶에 적용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경계(시간 관리, 말씀 암송, 동역자 점검 등)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반쯤 올라간 성벽 앞에서 지치지 않도록 새 힘을 부어 주옵소서. 기도하는 손과 경계하는 눈을 동시에 열어 주셔서, 혼란과 위협 속에서도 사명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모든 완성의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