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3일 (목)
아나니아의 순종 🌿
사도행전 9:10–17 (개역개정)
용서
중보
📖 본문 말씀
사도행전 9:10–17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니,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거늘,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집 거리라 하는 거리로 가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아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들었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나이다,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7 아나니아가 주께서 시키신 대로 가서 사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던 길에서 나타나신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네가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 본문 해석 및 적용
사울의 회심 뒤에는 이름 없는 제자 아나니아의 순종이 있었습니다. 그는 박해자였던 사울에게 찾아가야 한다는
주님의 명령을 듣고 두려워했지만, 결국 ‘가라’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다 설명하지 않으시지만, 순종 속에서 그의 계획을 드러내십니다.
아나니아의 한 걸음은 교회 역사 전체에 새 방향을 열었습니다.
주님은 “그가 기도하는 중이라”고 하십니다. 이미 하나님은 사울 안에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의 선행하심에 연결될 뿐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순종은 두려움보다 신뢰에 뿌리를 둡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기 전에 이미 일하고 계십니다. 🌾
아나니아는 사울을 향해 “형제 사울아”라고 부릅니다. 이는 단순한 인사 이상의 선언입니다.
어제의 적을 오늘의 형제로 부르는 순간, 복음은 실제가 됩니다.
용서와 화해는 성령 충만의 가장 확실한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복수의 고리를 끊고, 은혜의 연대를 이어가십니다.
교부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명령에 ‘왜’를 붙이는 순간, 순종은 멈춘다”고 말했습니다.
순종은 계산이 아니라 신뢰의 표현입니다.
아나니아의 이름은 성경 속 한 번 등장하고 사라지지만,
그의 순종은 영원히 복음의 역사에 새겨졌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가라.” — 그리고 그 길 끝에 은혜의 역사를 준비하십니다. 💚
🪞 묵상을 위한 질문
-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라’고 부르신 사람이 혹은 자리(사역, 관계)는 어디입니까?
- 용서해야 할 사람을 ‘형제’ 혹은 ‘자매’로 부르기 위해, 오늘 내가 내려놓아야 할 감정은 무엇입니까?
-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해야 했던 경험이 있다면, 그때 어떤 열매를 보셨습니까?
🙏 오늘의 기도
주님, 제 안의 두려움을 넘어 순종하게 하소서.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주님의 선한 뜻을 신뢰하게 하시고,
복음이 끊어진 자리마다 화해와 회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가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며, 한 사람을 향해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

